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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 자유주제 에세이대회 우수작(권재휘)
2014-11-21 13:55:26 조회수1294

해적왕을 품다

 

경제학과

2010047051 권재휘

 

 

경제공부를 하다 보면 간혹 해도 해도 헷갈리는 것이 있다. 나에게는 사치재가 얼마 전까지 그랬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최근 사치재의 소비자가 되고부터는 따로 이해할 필요가 없이 자연스럽게 그 속에 녹아들게 되어버렸다. 요즘 나는 해적을 소재로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One Piece’에 푹 빠져있는데 연장선상으로 피규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혹시 나처럼 이쪽에 관심을 갖게 될 사람들을 위해 지금부터 그 시장에서 나의 생존기를 써볼까 한다.

우선 피규어 시장은 여타 사치재와 같이 진품과 가품으로 나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두 시장이 경쟁을 하지는 않는다. 고가의 물건일수록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는 또 다른 사치재의 특성 때문이다. 진짜 경쟁은 진품사이에서 벌어진다. 가품과 진품의 차이는 보통 2배에서 10배 넘게도 벌어진다. 가품은 최대 3만원 이하의 일정한 가격에서 형성되지만 진품의 가격이 제조사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치재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아직 정식시장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소규모매장을 운영하거나 구매대행을 통해 거래되는 점이 대부분이다 보니 공급이 매우 적다. 만약 한정판, Excellent Model이나 Special Quality 시리즈가 나오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는다. 이 시장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만족도에 어느 정도 값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품선택의 우선순위는 가격이 아닌 퀄리티다. 이제 머릿속에 일반수요곡선과는 다르게 휘어져나가는 사치재의 수요곡선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피규어 시장에 대해 계속하여 이야기하기에 앞서 피규어는 사치재이지만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베블런 효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직 순수한 팬심으로 시장이 돌아간다. 오히려 피규어 수집과 같은 취미는 흔히 오타쿠라고 놀림을 받을 수 있어 사람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재미있게도 이 피규어 시장의 수요곡선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한 소비자의 발자취와도 같다. 처음에는 재미삼아 작은 가품을 한 두 개 구매한다. 조금 더 나은 품질의 가품을 찾다보면 점점 진품과 가격이 비슷해진다. 차라리 진품을 사게 낫다는 생각에 진품을 사보니 왜 진품을 사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점점 그 퀄리티에도 익숙해지며 점점 더 화려한 것 이제는 점점 더 큰 것을 찾게 된다. 사치재의 수요곡선 그 자체다. 나 역시 이 곡선을 따라갈 뻔 했지만 그래도 자산관리사 자격을 가졌고 3년 가까이 경제를 배워온 경제학도로서 이렇게 남들과 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소비활동에 있어 나만의 제한을 두기로 하였다. 수요곡선이 이형적으로 꺾이게 되는 그 지점, 질 좋은 가품과 아주 작은 10cm 미만의 진품이 거래되는 지점에 형성되는 가격대(약 1~2만원)까지만 허용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점점 품질에 대한 나의 욕구는 올라가고 있지만 사실 값싸고 질 좋은 것, 이게 얼마나 놀부심보인가. 그래도 그 이상 지출할 수는 없기에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고시장, 구매대행 등 여러시도를 해보았으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먼저 피규어 시장의 중고품은 중고만의 매력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피규어는 전시용이기에 감가상각이 적용되지가 않는다. 무슨 토지도 아니고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 피규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이라는 가치가 생겨 값이 더 올라간다. 다음은 일본을 자주 왕래하는 친구를 통해 구매대행을 시도해봤지만 웬걸 친구가 보내준 현지매장의 가격표와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해봐야 5천원에서 만원 차이뿐이었다. 기존의 구매대행자들은 이익에 욕심이 없나보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해답은 중국이었다. 정말 경제를 논하자면 중국은 절대 떼려야 뗄 수가 없나보다. 열심히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돌다가 다른 곳의 가품들과는 다른 정말 진품 같은 품질의 심지어 가격마저 친절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는 한 사이트를 찾게되었다. 우선 나는 그동안 너무도 사고 싶었던 상품을 하나 구매한 후 어떻게 이런 상황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하여 판매자에게 다짜고짜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어떻게 가품이 진품과 거의 흡사한 퀄리티를 구사하면서 가격이 저렴하기까지 할 수가 있죠?’ 피규어 시장의 가품들은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중요한 건 진품 역시 중국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Bandai나 Banfresto 등의 일본 본사에서 중국공장에 주문하면 공장은 물건들을 만들어 일본으로 보내면 본사는 거기에 정품을 인증하는 인증마크를 붙인 후 판매를 한다.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이 인증마크를 흔히 금,은고양이 마크라고 하여 진품을 인증하는 것으로 상품포장박스에 붙여져 있는 금색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스티커이다. 때문에 나중에 중고로 물건을 팔 때에 진품으로 팔고 싶으면 이 박스를 잘 보관해두어야 한다.) 문제의 상품은 일본으로 넘어가기 전 중국공장에서 직접 납품해오는 것들이다. 일반 가품들하고는 달리 정품이지만 정품 인증만을 못 받은 상품들인 거다.

‘그럼 대체 진품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단지 인증마크가 있고 없고의 뿐인가요?’ 물건을 만들다보면 하자가 나는 상품들이 있는데 특히나 이 피규어는 형태가 나오면 그 위에 색칠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불량품이 많다고 한다. 결국 진품과 같이 만들어 졌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백조속의 이 미운 오리들을 중국공장이 자신들의 이윤으로 남기기위해 헐값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어머니께서 의류업계에서 근무하실 때 옷이나 악세서리들을 10~20%정도 되는 가격에 사오시곤 하셨던 게 떠올랐다. 하자가 있는 상품들을 직원들에게 싼 가격에 판매한다는데, 알고보아야 간신히 찾을 수 있는 정말 작은 흠집들이었다. 가품들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좋은 일이지만 정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상품에 금, 은고양이 마크를 꼭 확인해야한다. (이 틈새시장을 노려 진품 보유자 중 본인이 가지고 있는 박스만 파는 사람들이 있다. 박스에 이 가품(1~3만원)을 넣으면 진품(10만원~30만원)으로 탈바꿈 시킬 수 있는 것 이다. 그런 것 치고는 박스가격이 5천원이란 것은 꽤 싸게 느껴진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가격이 비싼 것 같은데 마진을 꽤 많이 남기시겠네요?’ 끝까지 이윤은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다른 얘기 하나를 마지막으로 해주었다. 중국현지공장도 이것을 일본 본사 몰래 판매하는 것이다 보니 정식경로 거치지 않고 물건을 납품해오는데 중간에 걸려서 세관에 묶인 물건들이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중국의 인건비와 비과세를 생각해 보면 꽤 남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감히 구경도 못 할 고품질의 상품들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소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정보에 대하여 그저 감사의 인사를 남겼고, 지금은 단골 중 한 명이 되어 방 한 칸에 멋진 해적단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소수를 공략하는 시장이 매우 열악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행에 매우 민감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동안 기업들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살아남기에는 국내시장이 너무 작았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경우 오래전 이미 영화, 도서,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의 문화콘텐츠들이 발전하여 세계시장에서 자리를 잡아 많은 산업들이 양산될 수 있었다. 최근들어 우리나라도 k-pop, 뽀로로나 라바 같은 애니메이션, 겨울연가나 장금이, 올드보이 등의 영상매체 뿐 아니라 모바일 게임업체들까지 가세하여 많은 문화콘텐츠들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문화콘텐츠가 가발, 조선, 반도체, 엘렌트라 그리고 갤럭시를 넘어 새로운 한류를 일으킬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의 한류에 그것들을 느끼고 함께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다양한 소수시장과 현지전략 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최근 경제가 침체되고 있음에도 게다가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많음에도, 이러한 좋지 않는 시장 상황 속에서 계속 남아 있는 수요층이 있다는 것은 한국 문화콘텐츠 시장은 높은 구매력과 충성도를 가지고 있는 값진 고객층을 흔히 말하는 덕후(오타쿠를 발음하기 쉽게 덕후라고 지칭한다)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고객들과 함께한다면 문화한류는 한 층 더 강해져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혹시 이 피규어 시장에서 작은 용돈벌이 해볼까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장만의 경제원리 팁을 하나 주고 싶다. 반드시 원피스를 봐야한다. 스토리를 분석하여 잘 팔릴 것을 캐치해서 상품으로 내놓아야 한다. 고가의 피규어는 well-made 피규어지만, 잘 팔리는 피규어는 그 때 그때 스토리 상 잘나가는 캐릭터와, 인상 깊었던 명장면을 옮겨놓은 피규어임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진품인 듯 진품 아닌 진품 같은 해적왕’에 푹 빠져 있지만 나는 절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가 직접 이 세계시장이라는 망망대해에 나아가 Blue-Ocean을 찾아 세계의 돈을 쭉쭉 빨아들이는 ‘해적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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