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고양이도 고양이다.
20008048466 정진택
우리 집에는 생후 5개월 정도인 고양이가 있다. 이 녀석의 이름을 ‘비비’라고 지어줬고, 올해 8월 말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그걸 알아차려서 쪼르르 달려와서 애교를 부리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현관까지 나와서 반겨준다. 그리고 내가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을 때엔 내 다리 위에 올라와 앉아서 귀여워 해달라고 야옹거리다가 자리 잡고 잘 때도 있다. 내가 자려고 할 때엔 내 옆에 딱 붙어서 잘 준비를 한다. 침대를 따로 만들어 줬는데 말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비비가 어느 새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고 느낀다.
비비가 우리 집에 들어오기 전에 ‘레옹’이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잠깐 살았었다. 후배네 고양이였는데, 그 후배도 자기 친구가 군대를 가게 되면서 자기가 키우겠다고 데려왔던 아이다. 그러다 후배가 이사하게 되면서 나한테 레옹이를 잠깐 맡겼었다. 레옹이는 참 똑똑한 고양이었다. 내 말도 어느 정도 알아 들었고 여닫이 문을 열 줄 알았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문을 열어 놓기 때문에 바람이 들어와서 고생 좀 했지만 레옹이와는 잘 지냈었기 때문에, 다시 돌려보낼 때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것을 느꼈었다.
레옹이가 후배한테 다시 돌아가고 나서 2주 정도 뒤에, 레옹이가 집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후배는 잠깐 현관문을 열어 놨었는데 레옹이가 밖으로 튀어 나갔다고 말했지만 난 믿지 않았다. 우리 집에 있었을 때도 잘 지냈었던 고양이가 집 나갔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고, 그 녀셕이 책임감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한테 욕을 하고 나서 우리 집으로 데려올 생각으로 레옹이를 찾으려고 며칠을 길거리를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레옹이를 찾았지만 야생화가 다 되어 있었고, 다가가면 공격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집으로 데려오진 못했다. 그래서 레옹이에 대해 내가 키우겠다고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가끔 레옹이를 보면 참치 캔을 사서 바닥에 놔 주었다. 그러면 레옹이 뿐만 아니라 다른 고양이들도 몰려와서 같이 먹었는데 이 때, 우리 학교 근처에 길 고양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고양이의 연령대도 다양했는데, 1살이 넘은 애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들도 종종 있었다. 한 가지 더 느낀 점은 대부분의 아이들의 영양 상태가 안 좋았다는 것이다. 원래 레옹이 같은 경우 비만이었는데, 집을 나간 이후에는 뱃가죽이 등에 붙어 있었다. 이렇게 대부분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지만 몇 몇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길 고양이들에게도 약육강식의 세계가 적용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다 비비를 만난 것은 8월 말 어느 날 밤이었다. 그 당시에 아는 형님이 동네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고양이가 돌아다닌다고 종종 말했었는데, 그 날 친구 녀석이 우리 집에 와서 그 고양이를 봤다고 말을 했다.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서 밖에 나갔는데, 왠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를 뒤적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같이 나왔던 친구가 그 고양이가 자기가 말한 아이가 맞다고 했고, 전에 형님이 말한 특징하고도 일치했었다. 특이한 것은 이 녀석이 우리가 가까이 가도 경계를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가 키우라고 했지만, 나는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레옹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내가 이 녀석의 일생을 책임질 수 있을 지를 길가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몇 분을 고민하고 있었을 때, 뒤에서 큰 고양이가 점점 이 아이에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 고양이가 이 아이하고 놀아주려고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큰 고양이가 비비에게 점점 다가올수록 비비는 경계를 했고 나중에는 쓰레기통 사이에 좁은 틈으로 숨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보고나서 내 친구는 그 고양이를 ?아냈고, 나는 비비를 안고 집에 왔다. 즉, 비비의 일생을 책임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다.
가끔 동물 병원에 가서 수의사 선생님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이 동네에는 길 고양이가 많다고 말씀 하신다. 우리 학생들이 키우다가 여건이 안 돼 버린 애들이거나, 집을 나간 애들이라고 한다. 우리 나이 대 사람들은 반려 동물을 데려올 때, 고민 자체를 아예 안 하는 것 같다. 고양이나 강아지의 수명은 10년 정도 인데, 그 기간 동안 키울 생각 보다는 당장의 자기 위안을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결과 학교 주변에 길 고양이들이 많은 것이다. 만약 전 주인들이 좀 더 책임감이 있었으면 고양이들이 길거리로 내 몰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현재 3개월 차 초보 고양이 아빠긴 하지만 지금도 비비를 키우면서 느끼는 점은, 길 고양이나 다른 곳에서 입양한 고양이나 똑같다는 것이다. 주인이 얼마나 고양이에게 관심을 가져 주냐에 따라서 이 녀석들도 주인에게 감사하고 좀 더 주인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생각 중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길 고양이를 주워 오는 것이 어때?”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