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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 자유주제 에세이대회 우수작(김민석)
2014-05-07 14:19:17 조회수1147

제목 : 이별과 믿음

성명 : 경제학부 김민석


영 : 너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
도 그 중에서 잘 되는 사람들은 3%밖에 안 된대.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지는 거
야. 처음에 헤어졌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동희 : 같이 갈래?
영 : 무서워.
동희 : 뭐가?
영 : 넌 우리가 그 3% 안에 들 수 있을 것 같아?
동희 : 너 그거 알아? 로또 있잖아. 로또가 당첨될 확률이 814만분의 일이래.
근데 그게 매주 1등이 몇 명씩 그렇게 막 나오잖아 814만분의 1인데,
그러니까 3%면 되게 큰 숫자야 엄청나게 큰 거야.
영화 ‘연애의 온도’에 한 장면이다. 극중 영이와 동희는 사랑하는 사이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시 만나도 될지 주저하고 있는 사이이다. 그들이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시
만나도 또 헤어지는 결과를 낳을 것 같은 두려움이고, 상대방의 마음속 나에 대한 사랑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데서 나오는 불안함이다. 사랑은 눈으로 보이는 형체가 없기에 마치 슈
뢰딩거의 고양이 (Schrodingers Katze)처럼 살아 있는 사랑인지 죽은 사랑인지 모르는 것
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 역학의 한 이론인데, 신경독이 퍼진 상자 안에서 ‘고양이는
죽거나 살았다’는 두 가지 우주가 있고, 그것을 확인하려고 상자를 여는 순간 그건 죽은 고
양이로 증명된다는 이론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은 사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기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상자 안에 담겨진 고양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사랑이 살았
는지, 죽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상자를 열어 꺼내봐야 아는데 상자를 열기까지는 살아있을
수도 죽어있을 수도 있는 이 사랑이 갖은 오해와 불신이 곁들여 꺼내어 지면 죽게 된다. 이
것은 ‘날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물으며 생사를 확인할 때 너무나 자주 벌어진다. ‘나를 사
랑한다면 너의 사랑을 증명해봐’와 같은 행동은 서서히 사랑을 상자 밖으로 꺼내려 하는 행
동이다. 이런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은 상처받고, 꺼내어진 사랑의 결과는 죽어있음을 나
타내게 된다. 꺼내어지기 전까지 살아있을 수도 있던 사랑은 그들이 만들어낸 불신의 결과,
‘사랑이 죽었다’는 것으로 그들에게 보여 진다.
영이와 동희도 다르지 않았다. 서로 사랑했지만 만나기만하면 티격태격 싸우고, 심지어 회
사 회식자리에서 서로에게 맥주를 끼얹으며 서로 욕하며 싸운다. 그러고 나서는 ‘너 나 사
랑하기는 했니?’라는 물음과 함께 그들의 사랑이 죽었음을, 아니 애초에 사랑은 상자 안에
서 조차 죽어있었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불신인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것은 사
람의 감정이고 사물인 고양이처럼 꼭 죽은 것으로 끝이 나지 않기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다
시 그들에게 퍼진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연애의 한 모습이다. 우리는
헤어지고도 너무나 쉽게 다를 수 있다 믿고 82% 중 3%라는 말도 안 되는 확률에 자신들을
밀어 넣는다. 그들이 이렇게 이미 ‘죽어있다’ 확인한 사랑을 다시 상자 안에 집어넣는 것은
왜일까. 모순적이게도 ‘사랑이 죽었다.’ 확인 했지만 ’사랑 했었다’는 그 사실 때문일 것이
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르핀 주사 같이 ‘사
랑이 죽었다‘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해주고 심지어 초콜릿처럼 달콤했다. 영화에서 재회한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을 어떻게 죽였는지 조차 잊을 만큼 설레는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나
죽은 고양이를 봤던 탓일까? ‘다시 만난 사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조심스러웠다. 또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또 상자 안에 또 다른 독가스를
뿜어 넣게 된다. 참고 견디는 것으로 한동안의 분쟁은 잠시 뒤로 미룰 수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있었고, 결국 이것이 다시, 아니 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사랑을 죽였
다. 한 번의 이별 후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꺼내어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사랑은 죽었음이 증명되었다. 서서히, 느끼지 못할 만큼 천천히.
그들은 스스로를 참고 견뎌왔기에 느끼지 못할 만큼 천천히 서로에게 독가스가 퍼졌고 상자
안의 그 농도는 점점 짙어져갔다. 그렇게 그들은 비오는 놀이동산에서 예전에 싸웠던 똑같
은 이유들로 다시 싸우게 되고 그 순간 그들은 망각했던 그들의 싸운 이유들을 기억하게 된
다. 서로에게 열심히 하려고, 잘하려 한 그 마음은 같았으나 그들의 노력은 거기까지였다.
만남과 헤어짐의 쳇바퀴는 돌고 돌아 처음 그 상자를 열었던, ‘사랑이 죽었다’의 상태로 다
시 돌아 온 것이다.
이 영화는 현실을 너무도 닮아있다. 그렇기에 사랑을 하고 헤어져본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
기에 많은 공감을 한다. 헌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도 아닌 이런 현실
적인 영화에서 조차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도 어렵다.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우리는 사랑을 하고 한번 헤어져봤어도 똑같은 이유로 쉽사리 헤어지게 되는 순
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상대방의 생김새, 말투, 성격 등 외부
적인 이유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의 내부에 그리고 그 원
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깃털처럼 ‘가벼운 믿음’이 깔려있을 것이다. 너무도 쉽게 본질적인 문
제에 대한 반성과 노력 없이 나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 그리고 작은 바람에도
소스라치며 사랑이 아니었다고 뒤돌아서는 그 ‘가벼운 믿음’이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서 중
요한 가치인 사랑을, 따뜻해야할 연애의 온도를 차갑게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참고 : 영화 ‘연애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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