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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 아담스미스 에세이대회 우수작(원유빈)
2014-05-07 14:07:36 조회수1099

제목 : 100원의 경제학이 ‘창조경제’에 주는 시사점

성명 : 경제학부 3학년 원유빈


나는 종종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마트에 가서 장을 본다. 장을 볼 것이 많지 않을 때는 보
통 장바구니를 이용하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을 사거나 긴 시간동안 마트에 있을 경
우에는 카트를 이용한다. 입구 앞에 겹겹이 포개어 정돈되어 있는 카트들을 이용하기 위해
나는 카트에 100원짜리 동전을 손잡이 부분에 넣고, 서로서로 묶여있는 자물쇠를 푼 후, 카
트를 두 손으로 몰며 매장 안으로 들어간다. 마트에서의 장보는 것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카트를 몰아 카트들이 나란히 포개어져 있는 곳에 내가 사용했던 카트를 밀어 넣
은 후 자물쇠를 집어넣어 내가 사용했던 100원짜리 동전을 받아 집으로 간다. 이는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험이기도 하다.
왜 자신이 사용한 카트를 다시 제자리에 정렬하였는가? 무엇이 이러한 질서를 만들었는가?
바로 100원이다. 많은 이들은 카트를 이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100원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
카트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단돈 100원이 사람들의 유
인체계를 변화시키어 질서를 지키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
람들은 자신만의 유인체계를 통해 편익과 비용을 계산하여 무언가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사
람들이 100원을 되돌려 받기 위해 카트를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는 수고를 한다는 것은 그
들이 생각하는 카트를 제자리에 놓는 수고의 비용이 100원보다 작다는 것의 방증이다. 단
돈 100원이 질서를 만들었다.
단돈 100원을 통해 질서를 만들 뿐만 아니라, 그 밖에 화폐적인 효익과 비화폐적 효익도
만들 수 있다. 100원이 없어도 카트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의 비용과 대비해보면 100원이
만들 수 있는 효익을 잘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은 아무런 제약없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카
트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의 필요보다도 좀 더 과대한 양의 카트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쇼핑을 마치고 난 후에 정리할 유인이 없기 때문에 빈 카트가 온 매장의 이곳저
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이로 인해 마트에는 화폐적인 정리비용이 발생되며, 소비자의 입장
에서는 쾌적하지 못한 쇼핑환경으로 인한 비화폐적 비용이 발생하게된다. 이처럼 100원은
‘공공재의 비극’으로 설명되는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경제주체에게 화폐적효익 및 비화폐
적효익을 가져다 주게된다. 단돈 100원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가능케 된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역설하고 있다. 박대통령은 창조경제를 “패러다임의 전환
과 창의성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 일자리,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이를 위해 과학과 통신기술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창조경제의 첨병역할을 해주
어야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관점은 이와 조금 다르다. 나의 관점에서의 ‘창조경제’는 한
국가의 성장과 고용촉진을 위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뿐만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경제
원리의 변화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비화폐적인 효익의 증진을 위한 것들도 포함되어져야 한
다고 생각한다. 물론, 고부가가치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일상
가운데 누릴 수 있는 비화폐적인 효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크고 거창한 것들을 지나치
게 생각한나머지 작고 사소한 경제원리의 변화가 주는 저비용-지속가능한 효익들을 간과하
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경제 성장으로 인한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함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때때로 우
리는 이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 많은 대가들을 지불한다. 그러한 대가들 중에서는 돈을 주고
도 살 수 없지만 삶에 진정 중요한 것들도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단돈 ‘100원’과 같이 비록 
눈에 보이는 공장이나 굴뚝은 없지만, 많은 이들에게 풍요를 제공하는 경제 원리들이 있다.
이로 인한 풍요는 비교적 적은 대가를 지불하고도 사회적 질서나 경제주체간의 효율성과 같
은 것들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써의 ‘창조경제’는 전국가적 산업 측면
의 것들에 대한 창조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것들을 생각의 전환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지속
적인 화폐적, 비화폐적 효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들을 만드는 것을 포함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는 물질적인 것들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경
제’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적 발상을 통해 진정 삶에 중요한 비물질적인 것
들도 고려되는 넓은 의미의 ‘창조경제’로 우리의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런 의미로 단돈 100원으로 질서를 만들어낸 ‘100원의 경제학’이 원칙에 있어서 이번 정부
의 ‘창조경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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