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의 활력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신입생이세요?` `아...네..` `그럼 잠시 얘기 듣고 가요.` 그게 시작이었다. 관심도 없었고 한 번도 해 본적 없던 풍물과 탈춤 동아리에 들어오게 된 것이.미리 짜여진 각본처럼 상황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민속 문화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던 내가 지금 이 동아리의 부회장을 하고 있다.
20살 3월 달의 나는 처음으로 타지로 올라와서 매일 집을 그리워했다. 심지어 늦게 합격 발표가 나서 OT마저 가지를 못해 과친구를 만들지 못 했었다. 그래서 초반엔 진짜 혼자였다. 그러다 친구들이 차츰 생기긴 했지만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인생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과 고향 친구들을 떠나 혼자 모든 것을 한다는 것에서 오는 쓸쓸함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곳의 말투마저 어색했다. 이런 점들은 나의 외로움을 배 시켰다. 이 쓸쓸함과 외로움을 물리치기 위해 동아리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동아리 모집기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기간의 초반 이틀간은 아무런 동아리에 들지 못 했었다. 마음에 차는 동아리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항상 남이 시키는 것을 하고 어른들이 정해준 가이드라인에 따라 걸어가던 나에게 스스로 하는 결정이란 아직 어려운 일이였다. 겁이 났었다. 내가 과연 처음으로 동아리를 들어가서 적응하고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벌써 동아리 모집기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항상 인생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짧은 기간 동안 조금 친해졌던 친구가 자신이 자기가 들어간 동아리의 부스에 있다고 했다. 곧 있을 수업을 같이 가기위해 그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운명처럼 탈을 만났다.
탈은 첫날부터 이상한 동아리였다. 신입생 환영회를 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의자에 앉히더니 짓궂은 질문을 하다가 꽹과리에 막걸리를 한통 넘게 부어서 주었다. 못 먹겠으면 남겨도 된다 했지만 내 목으로 들어오는 막걸리는 맛있었다. 그래서 다 마셨다. 그날이 나와 이 동아리뿐만 아니라 막걸리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기도한 날이었다. 그 다음날은 과 엠티였지만 그날 대학 와서 처음으로 밤을 새봤었다. 공부가 아닌 술로 밤을 샌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그 다음부터 나는 왠지 모르지만 이 동아리가 마음에 들었고 매일매일 동아리방으로 놀러가고 동아리 형 누나들에게 연락을 하며 1학년 1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축제기간에는 동아리에서 민족 주점을 하기도 했고 장구를 처음으로 배웠다. 아직도 장구는 어렵지만 그래도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꽤나 재밌었다.
그리고는 방학이 다가왔다. 우리 동아리는 여름에 탈춤 전수를 간다고 했다. 탈춤을 배운다니... 교과서에서나 봤던 그런 것을 내가 배우게 되는 구나란 생각으로 전수를 받으러 갔다. 그래도 인간문화재 선생님들과 전수자님들에게 배운다는게 걱정되기도 하고 기대도 되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전수관에 도착한 나는 보자마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80년대의 시골길 같은 언덕을 넘어 가니 건물이 아니라 허름한 컨테이너박스가 몇 개가 조촐하게 붙어있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티비나 영화 등에서 보던 한옥이나 한복 입은 사람들은 없고 파리만 있었고 시설이 매우 열악했다. 심지어 여름인데 에어컨도 없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탈춤의 기본 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생활 중 가장 몸이 힘들었던 3일이였다. 심지어 나는 배움이 느려서 따라가기가 매우 벅찼다. 그래도 전수관의 막내라 다들 친동생처럼 대해주셨다. 3일이 지나고 조금씩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7박 8일 동안 탈춤을 배우고 돌아오니 신기하게 전수관이 그리웠다. 전수관은 다시는 안가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재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매우 신기한 곳이다. 전수를 다녀오니 아직 덥긴 했지만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감과 동시에 2학기가 시작이 되었다. 1학기보다는 학교의 생기가 사라지는 2학기라 조금은 심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바로 공연을 준비를 하게 되어 엄청 바빠졌다. 큰 배역을 맡아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야외에서 공연을 하게 되어 부담이 더욱 커졌다. 그래도 열심히 매일 연습을 하니 공연을 성공리에 끝낼 수 있었다. 비록 나는 실수투성이에 긴장도 엄청 했지만 그래도 매우 뿌듯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이제는 하나씩 할 수 있는 것이 늘어가는 구나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2학기도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내 1학년은 탈로 시작해서 탈로 끝났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동아리 들어서 뭐하냐고 취업할 때 스펙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기가 많은 동아리도 아닌데 뭐 그리 열심히 하고 좋아하고 시간을 많이 쓰냐고 그런 것들은 다 쓸모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떻게 보면 스펙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취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대학생활에 있어서 동아리가 있었기에 더욱 풍요로울 수 있었고 공부만이 아닌 새로운 일들을 20대에만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나의 20살이 더욱 빛 날 수 있었고 현재의 대학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준다. 그리고 동아리에서 만난 많은 선후배들이 있고 그들과의 추억이 있어서 더욱 더 소중하다. 2012년 봄으로 돌아가서 동아리를 들어야 하는 지 말아야 하는 지 기로에 있다면 나는 여전히 동아리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동아리에 꼭 들어가야 하냐고 물어보면 꼭 동아리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정말 즐기고 열심히 한다면 대학생활의 활력이고 추억이 될 것이라고 자신이 있게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리 들어오기로 선택한 3년전의 나를 칭찬해 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