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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 자유주제 에세이대회 우수작(정미연)
2014-11-21 13:54:46 조회수1357
휴학 중 쓴 소중한 종이 한 장
2011048109 경제학부 정미연

작년에 나는 휴학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만 가면 다 해결된다고 해서 고생해서 대학을 갔는데, 나를 반겨준 것은 다름 아닌 희귀병이었다. 내가 앓는 질병의 이름은 의학명은 HS자반, 일반적으로는 “알레르기성 자반증”이라는 불리는 질환이었다. 피가 몰리는 곳으로 몸의 모세혈관이 다 터진다. 유아기, 청소년은 금방 회복할 수 있지만 성인은 매우 드물며 완치를 10년을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이게 웬 일인가. 내가 상상했던 아름다운 캠퍼스 라이프는 망가졌고, 언제나 헐렁한 트레이닝복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다녔다. 그런 아픈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누군가가 좋아할까? 나는 “학우”라기 보다는 “연민의 대상”이라고 스스로 단정 짓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이렇게 살 바에 편하게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학교를 더 다니기에는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었고, 결국 휴학을 선택했다. 어떻게 1년을 보내야 할지 그저 막막했다. 몸은 나아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ㅁ는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어 힘든 일은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 대학원 도서관에서 잠시 일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서울대학교’와 ‘도서관’이라는 단어에 솔깃해서 앞으로의 일은 생각지도 않고 바로 승낙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혼자 근무를 해야 해서 업무량은 많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나를 인정해주는 모습에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일하던 어느 날이었다. 우편 업무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돌아가고 있던 나는 정말 운명과도 같은 포스터 한 장을 보게 된다. ‘혜민 스님의 마음 치유 콘서트, 오후 7시 대강당’
당시 2013년 중순에는 ‘힐링’이 상당히 유행한 때였고 나도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라는 책을 매우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에 꼭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포스터를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신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퇴근을 하고 바로 대강당으로 가서 스님을 기다렸다. 당시에 뒤에서 내려오시던 상황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기억난다. 여러 스님들과 같이 내려오시는데, 혜민 스님 혼자 유달리 얼굴이 잘 생기셔서 다른 스님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혜민 스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묵언 수행중이지만 예전부터 약속한 것이라 강연을 나왔다는 혜민 스님의 첫마디로 마음 치유 콘서트는 시작되었다.
혜민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상처를 주는 개체는 보통 3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상처를 줄 때가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더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는 애인 혹은 친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두 번째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게 된다면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하셨다. 그런 배신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어짜피 배신할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얽매여 있어 새로운 인연들을 못 만나게 될 수도 있으니 오로지 내 사진을 위해서 원망을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이다. 가족에 대해서는 부모 입장을 고려하여서 말씀하셨으므로 좀 어려웠지만, 배우자에게는 적당히 하고 시부모에게는 무조건 잘 해드리고, 자식에게는 잘 해주면 그것을 당연시 여기기 때문에 약간의 무관심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세 번째 “가족”얘기에 정말 감명을 받았지만, 지금은 첫 번째, 두 번째 얘기에 더 공감을 많이 하게 된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에게 10원 더 보태주지 않는데 내가 왜 그 사람들에게 마음을 써야 할까? 내가 처음에 언급한 ‘연민의 대상’이라고 스스로 단정짓고 문을 닫을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또한 나를 배신한 친구들은 관계를 맺을 처음부터 내가 그들의 친구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기 때문에 배신을 했을 것이다. 배신 조차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아,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그 이외에 스님께서는 뒷담화의 사회적 연구 자료를 설명해 주시면서 “뿌린 대로 거둔다”를 입증하는 얘기도 해주셨고, 그 이외에 사람들의 고민도 들어주셨다. 내년에 의사가 되는데도 그것도 고민이 되는 학생도 있었고, 부모와의 관계가 안 좋은 학생, 이룰 것을 다 이룬 것 같으면서도 계속 치여사는 것 같은 어머님 등, 사람들의 고민들은 정말 다양했다. 특히나 서울대 의대, 치의대생들이 함께 들은 것이므로 인생에 대한 고민들이 그렇게 깊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은 다 똑같이 행복하고, 슬퍼하고, 같은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 콘서트 이후로 조금 더 마음을 예쁘게 먹고 스님의 말을 실천하려고 했더니, 관계에서 스트레스도 덜 받고 몸도 계속 나아져 갔다. 지금은 거의 완치여서 심하게 무리하지 않는 이상 정상인과 같은 상태다. 나는 그 때 당시 필기했던 종이를 아직도 소중히 갖고 다닌다. 다이어리 사이에 넣어두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꺼내서 한번 씩 읽어보곤 한다.
작년에 나는 휴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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