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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 자유주제 에세이대회 우수작(정*호)
2015-12-01 09:02:14 조회수2820

용서해줄 용기

 

초등학교 시절 나는 굉장한 개구쟁이였다. 수업시간에는 우스꽝스런 농담으로 아이들을 웃기길 좋아했고 그 때문에 잔잔한 수업분위기는 시끌벅적해지기도 했다. 또한 체육시간이 아닌 수업인데도 불구하고 담임선생님께 날씨가 화창하니 밖에 나가서 축구를 하자고 말하는 그야말로 엉뚱한 학생이었다. 그 덕분인지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친구들은 늘어갔다. 그 중에서 같이 축구하며 친해진 친구들은 당시 소위 말하는 ‘일진’친구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꼬맹이들끼리 그런 말하는 게 우습지만 그 때 우리끼리는 싸움 잘하는 친구들을 일짱, 이짱... 짱이라고 불렀었다. 딱히 그런 것에 관심은 없었지만 그 친구들과 친하다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속해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친구들을 둘도 없는 내 친구들이라고 생각했고 그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6학년 때의 일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반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체육시간이 아닌 수업시간에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나갔다. 운동장에는 9반이 체육수업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 시기가 우리 학교 최고로 축구 잘하는 반을 가리기 위해 시합을 하고 있던 시기였고 9반과 6반인 우리 반이 결승에 오른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 반 담임선생님의 심판 하에 결승을 치룰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9반에는 태권도도 같이 다니고 학원도 같이 다니는 친한 친구들이 많았고 그 중 일짱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와는 서로 집에 놀러가서 같이 놀면서 매일 태권도도 같이 다니며 늘 붙어 다닐 만큼 친한 친구였다. 시합 전 담임 선생님께서는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서로 부딪히거나 넘어뜨렸을 경우 서로 안아주며 ‘사랑해’라는 말을 해주라고 하셨다. 그리고서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은 반장인 나의 진두지휘 하에 움직였고 9반은 일짱 친구가 리드했다. 그렇게 열심히 골 넣기를 시도하던 중 서로의 승부욕에 그 일짱 친구와 나는 부딪혔고 그 친구가 넘어지게 되었다. 나는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안아주며 화해하려고 했지만 그 친구는 냉정히 손을 뿌리치며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 기분은 찜찜한 채 경기를 마쳤다. 경기 결과는 1대0 우리 반의 패배였다.

축구가 끝나고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같은 반인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친구에게 일짱 친구와 있었던 일을 얘기했고 ‘사과를 안받아주니 서운하다. 너무 한 것 아니냐‘라는 말을 했다. 그 때 그 친구는 교실로 가는 내내 아무 대답 없이 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평소와 같이 나는 학교에 갔고 친구들을 만났다. 난 평소처럼 행동했고 친구들을 대했다. 그런데 애들의 반응은 뭔가 좀 달랐다. 나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하고 반응이 별로 없고 서로 끼리끼리만 얘기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큰 일일 것이라고 생각지 못 한 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키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를 받으니 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놀란 목소리로 대뜸 나에게 너 무슨 일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는 나의 말에 그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로 들려온 말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나와 유치원부터 친했던 친구가 말하기를 일짱이라는 친구가 나를 왕따 시키기로 했고 더 이상 나와 놀지 말라며 같이 놀다간 너도 왕따 된다는 말이었다. 전화를 해준 친구에게 나는 알려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남기고 나중에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후 그 날 아이들의 나에 대한 태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기에 더 큰 배신감과 이제는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을 수도 없겠구나란 두려움의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 후로 아니 바로 다음 날부터 학교에서의 내 생활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다. 그 많았던 친구들은 날 피하는 듯 한 느낌이었고 점점 내 자신도 소극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 나를 왕따 시켰던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왕따가 아니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자신들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했다. 내가 갑자기 바뀐 이유를 묻자 그들은 또 다른 아이의 이름을 대며 이제는 그 애가 왕따라고 했다. 이유를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어이없는 쓴웃음을 짓고만 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후로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지는 못했다. 그 영향으로 커가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들 사귀는 것에 더 조심스러워지게 되었다. 상대방 기분을 좀 더 신경 쓰게 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미를 두고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계의 벽을 너무 크게 두게 되는 경향이 생겼다. 그리고 너무 어렸을 때 받았던 충격이라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잊으려고 노력해도 가끔씩 그 순간들이 꿈속에 나와 생생하게 그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마다 그들을 원망하며 잠에서 깼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고 그 갈등은 서로의 화해나 타협을 통해 해소된다. 화해와 타협은 서로에 대한 잘못의 인정과 그에 대한 용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로는 불편한 마음을 간직한 채 갈등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간다. 10년이 넘게도 흐른 지금까지도 나는 그 악몽 같은 기억을 안고 살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문득 드는 생각은 그들이 나에게 그 때 진심어린 사과를 하며 다르게 행동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미안하다‘라는 4글자의 한마디 말고 감정이 있는 사과말이다. 그랬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들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 채 마음 한 켠에 트라우마라는 방 안에 그들을 담아두며 괴로워하고 있었을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나 혼자 괴로워하는 갈등을 끝내려고 한다. 그동안 내 기억속의 그들이 너무 괘씸해서 복수심 비슷한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듯하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좋지 않은 기억들도 내가 그 친구들을 용서함으로써 비로소 다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껏 용서할 용기를 갖지 못한 내 자신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진다. 물론 용서한다는 말로 깨끗이 용서 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이 용서를 하는 용기를 내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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