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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 자유주제 에세이대회 우수작(이정민)
2014-05-07 14:19:34 조회수1068

제목 : 외로운 현실에 대하여

성명 : 경제학부 이정민


2011년의 시작은 유례없는 폭설로 인해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철강공단의 도시답게 오랫
동안 큰 눈을 구경하기 힘들었던 나의 고향 포항은 사상초유의 폭설로 인해 도로가 마비되
었고 원활한 복구 작업을 위한 행정적인 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일선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과 공익근무요원들의 인력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수밖에 없었다. 2010
년 여름부터 고향의 한 동사무소에 근무했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근무지역은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언덕길과 골목길들이 많아서 제설작업은 녹록치가 않았다. 하루 반나절을
쉬지 않고 내린 눈은 60여 센티미터에 달했고 시민들은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우기에 여념
이 없었다.
상당히 깊숙한 골목까지 제설작업이 진행되었을 들어갔을 무렵, 눈이 거의 치워지지 않은
낡은 집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6.25 전쟁에 참전하신 어르신께서 사시는 집으로 어르신은
집 안에 계시는 듯 했다. 눈은 그쳤지만 해가 지면 쌓인 눈이 얼어버릴 위험이 있었기 때문
에 반드시 치워야만 했고 실례하겠다는 인사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두어 번 정도 삽
을 펐을까, 집 안에서 상당히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으니까 고마 가라.” 어투에는
도움이 필요 없다는 단호한 거절이 느껴졌다. 나의 도와드리겠다는 말에는 조금 있다가 치
울 테니 신경 쓰지 말라는 고집이 이어졌다. 주춤거리며 집을 나와 동사무소로 돌아기는 길
에 계속 마음 한편에 무거움을 지우지 못했고, 결국 복귀를 늦추고 다시 돌아갔다. 호통을
치시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묵묵히 삽질을 하며 눈을 치웠고 행여 나오실 때 넘어지시지 않
게 신경 쓰며 눈을 치우고 돌아갔다.
1박 2일간 내린 폭설은 한 달여 동안 나를 괴롭혔고 2월이 되고나서야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사단체 회장님께서 봉사활동에 사람이 부족하다며 도움을 요청하
셨고 나는 그렇게 지역 어르신 목욕봉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회장님은 목욕탕에서 문제가
생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할아버지 한분을 옆에서 도와드리면 된다고 간단하게
설명해주셨다. 혹시 지난번 그 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호통을 피하고자 만
나면 눈 치운 일을 거론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집결시간이 지났지만 할아버지는 아직 도
착하지 않으셨고 걱정되는 마음에 동사무소 밖으로 찾아 나섰다. 그리고 마침내 지팡이에
위태롭게 몸을 의지하시면서 힘겹게 걷고 계신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호통을 치던 할아버지
는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분이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부축 해 드리려 했더니 길이나 막지
말라며 날 쉽게 저지하셨다. 예상외로 힘이 좋으셨던 할아버지 옆에서 나는 어쩔 줄 모르며
위태위태한 발걸음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목욕탕에 가는 버스 안에서도, 옷을 벗
으실 때도, 목욕탕에서 몸을 씻으실 때도 할아버지는 철저히 혼자 움직이셨고 도움의 손길
은 일체 거절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세안 중이실 때를 노려 할아버지의 등을 씻겨드렸
더니 살짝 누그러지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끝나셨는지 탈의실 의자에 앉아 갑자기 말을 건네셨다. 이름도
직업도 묻지 않으시고 대뜸 나이부터 물으셨다. 나는 스물두 살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자신이
열다섯에 해방을 맞았으며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하셨다. 닳아 없어진 치아들이 할아버지의 발음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던 것처럼 할아버지의 말은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참전하게 되었지만 마침내 고향과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큰 자랑으로 가슴속에 남아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큰 자랑의 대가로 희생되어진 할아버지의 다리는 개인이 평생 동안 감당하기에는 큰 짐
이라고 생각되었다.
할아버지의 안전을 위해 댁까지 모셔다 드렸을 때 할아버지는 혼자 살고계신 듯 했다. 끝
내 도움을 거절하시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대문을 걸어 잠그신 할아버지였지만 불편한
다리가 더욱 쓸쓸해 보이는 탓에 서운함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가슴속에는 당당한 마
음을 품고 살아가시지만 현실은 외롭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생각에
대한 확신은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외로움과 쓸쓸함 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단지 몸이 불편하시고 혼자 사신다는 이유로 내 멋대로 평가
한 것은 아닌지, 나는 정녕 저분처럼 당당한 마음을 품고 살아 본 적이 있었는지, 정녕 외
로운 사람은 나를 비롯한 우리세대가 아닌지 말이다.
누구나 쉽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현 시대와 반대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
다. 졸업과 진로를 앞두고 있는 수많은 외로운 젊은이들이여, 우리는 마음속에 당당함을 갖
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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