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부 에세이대회

2015-2 자유주제 에세이대회 우수작(최*규)
2015-12-01 09:01:25 조회수276

노력과 노오오오력의 차이

 

무정한 확률의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일정한 비율로 성정이 비틀린 이들이 탄생하고는 한다. 이중에선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특별한 인간도 있다. 헨리 포드, 아이작 뉴턴 같은. 허나 그 외의 비틀린 성정을 가진 이들 대부분은, 위대한 변화와 무관하게 비사교적인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필자였고, 그러한 품성이 가장 얄밉게 발휘 되는 부분은 ‘질문’이었다. 남들이 불편하게 여길만한 질문을 하고, 그 후 미움을 사는 재주가 탁월했다. 나이를 먹고 어느 정도 누그러지긴 했으나 그 습관은 어디가지 않았다.

지난 봄, job fair라는 중소기업 박람회에서 개최된 강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요지는 1만 시간의 노력이 있다면 당신도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물리적으로 1만 시간의 노력을 들이기 힘드니, 4인의 팀을 조직하여 각각 2500시간씩 노력한 뒤, 그 정보를 공유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불필요해 보이는 유명인의 특정 사례를 보여주기 위한 동영상이나, 팀 구성과 정보공유의 난점 무시, 안이한 논리를 갖춘 노력 계산법 등 거슬리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몇몇 사례와 아이디어들은 가치가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불만은 없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뱃속의 심술보가 꿈틀거렸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키워드는 유명 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언급된 개념이다. 그 의미는 ‘모든 성공자들은 자신의 분야에 약 1만 시간의 노력을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필자도 군복무 시절 이 책을 읽었다. 1만 시간 동안 노력한 사람의 실험군과 대조군의 결과를 보여주는 신뢰할만한 보고서는 아니었지만, 동감할 수 있는 내용에 필력도 매력적인 책이었다. 해당 강연이 끝날 즈음에 필자는 물었다.

“일종의 설문인데, 아웃라이어 전반부 챕터가 무슨 내용인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그 책의 논지에서 기초를 이루는 내용입니다.”

강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거기에 필자는 건방진 어투로 말했다.

“시대적 배경, 세대, 행운 등이 없다면 성공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뒤이어 책에서 언급된 약간의 예시를 든 뒤 손을 내렸다. 천재였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남자, 1분기에 태어나지 못해 신체적으로 덜 자란 나머지 확률적으로 프로 하키선수가 될 수 없었던 소년들, 적절한 시기에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던 빌게이츠 등등.

강사도 끄덕이며 그런 내용이 있었다는 식으로 웃어넘기는 듯 했다. 거기에 도망치지 말라는 듯이 “왜 사람들은 1만 시간의 법칙만 기억할까요? 결국 사회, 문화적 테두리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게 책의 논점이었는데.”하고 덧붙이기 까지 했으니, 입 다물고 듣기만 하는 청중을 상대하는 것이 편할 강사로선 일진 사나운 날이었을 것이다.

그날 강의는 끝났지만 이 질문은 생각 외로 쓸 일이 많았다. 이때를 계기로 학교로 오는 외부 강사들의 특강에 갈 때, 1만 시간의 법칙을 인용하려 들면 위의 질문을 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약 5번 정도였고, 하나 같이 그 부분에 대해선 제대로 기억하거나 강의에 반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한 질문이지만, 대답을 들을 때마다 노력만을 강조하는 더러운 현실이라며 새삼스럽게 조소했다. 덕분에 자신이 똑똑하고 깨어있는 지성인이라는 저열한 만족감에 젖을 수 있었다.

덩달아 생활도 나태해져갔다. 부모의 등골 빨아먹으며 놀 수 있을 때 노는 것이, 이룰 수 없는 고액 연봉에 매달리는 것 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친구와의 대화에서 이 만족감은 물러나버렸다. ‘노력과 노오오오력의 차이점’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노오오오력’이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초인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를 비웃는 용도로 쓰는 ‘노력’의 변형된 용례로 전혀 다른 단어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때 성공의 조건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내 의견을 피력하자, 친구는 “그래서 어쩌라고? 모든 게 확률론적 인과로 정해져 있고, 자유의지 따윈 없으니까 내키는 대로 살다가 죽자는 얘기야?”하고 되물었다. 그 자리에서는 “오. 물론이지.”하며 농으로 넘겼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그 때의 대화를 계기로 도서관에서 빌린 아웃라이어를 다시 읽었을 땐, 전혀 다른 행간이 눈에 들어왔다. 노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이고, 시대적 배경과 준비된 인재의 결합은 성공의 충분조건이란 내용이 그것이다. 즉, 노력으론 성공이 보장되지 않지만, 때와 장소를 잘 만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강사들의 노력타령을 비웃는 나또한 놓친 것이 있었던 셈이다.

확률은 정해져 있고 우린 그 패를 볼 수 없다. 득인지 실인지도 모른 채, 그저 모든 지혜를 쥐어짜며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설령 강사들이 단천한 지식으로 1만 시간의 법칙을 오용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그 자체를 비웃어선 안 될 일이었다. 비웃어야 할 것은 일부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과도한 ‘노오오오력’이다. 이 둘을 혼동해선 안 될 일이었지만, 나는 ‘노력’ 자체를 부인하고 느슨한 삶을 살았다. 실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 자그만 깨달음과 함께 그날도 확률의 신은 무정하게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세상을 굴리고 있었을 것이다. 대단한 변화는 없었더라도, 이 깨달음을 포함해 내 미래는 조금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QUICK MENU SERVICE
 
사이트맵 닫기